공허함을 느끼면 우울증일까?
삶의 의미를 잃었다고 느끼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우울 증상을 더 자주 호소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는 나는 우울증일까? 혹은 우울증으로 진행될까?
실존적 공허감과 우울증의 차이
실존적 공허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 의미나 삶의 목적을 상실했을 때 경험하는 깊은 허무감과 무의미함을 뜻한다. 이 개념을 정의한 빅터 프랭클에 따르면, 실존적 공허는 단순한 무기력감이 아니라, 인간이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할 때 나타나는 심리적·정서적 상태라고 했다.
우울증은 지속적인 슬픔, 흥미 상실, 무기력, 자존감 저하 등의 증상을 특징으로 하는 주요우울장애로 정의되며,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의 진단 기준에 따라 진단된다. 그중 일부를 살펴보면 정의된 증상 중 5가지 이상이 동일한 2주일 동안에 나타나고, 예전과 기능 차이를 나타내야 한다. 적어도 하나의 증상이 '우울한 기분' 또는 '흥미 또는 즐거움의 상실'이다. 이 외에도 세부적인 진단 기준이 있다.
다시 정리해 보면 실존적 공허와 우울증은 모두 개인에게 깊은 허무감과 무기력함을 야기하지만, 그 원인과 증상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실존적 공허는 삶의 의미나 목적을 찾지 못해 발생하는 내적 갈등으로, 개인이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을 품을 때 나타난다. 반면, 우울증은 생물학적, 심리적, 환경적 요인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지속적인 슬픔, 흥미 상실, 피로감 등의 증상을 보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왜 실존적 공허와 우울증을 구분해야 할까?
두 상태가 지닌 원인과 해소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존적 공허는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심리적 혼란에 가깝다. 반면 우울증은 생물학적, 정서적, 환경적 요인이 맞물려 나타나는 임상적 주요우울장애다.
만약 실존적 공허를 단순 우울증으로 치부하면, 스스로 해야 하는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주체적으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약물 또는 심리치료로 빠르게 증상을 해결하는 접근이 진행될 수 있다. 반대로, 임상적 우울증을 의미 부재에서 오는 가벼운 고민쯤으로 여긴다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 증상이 악화될 위험이 크다.
따라서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 발생하는 허무함”인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우울증”인지를 객관적으로 구분하는 일은 이후 대처 방식과 회복 과정에 있어 결정적인 차이를 낳는다.
실존적 공허가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의미 상실이 정서적 붕괴를 초래함
삶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을수록 작은 실패나 좌절에도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그 결과 “나는 가치 없는 존재”라는 인식이 반복되면, 결국 기분장애 수준으로 하락한 정서를 경험하게 될 수 있다.
자기 비하·무가치감의 강화
실존적 공허에서 “도대체 내가 원하는 게 뭘까?”라는 물음이 오래 머무르면, 자기 비하로 이어지기 쉽다. “나는 뒤처지고 쓸모없다”는 감정은 우울증의 주된 특징인 부정적 자동사고와 결합하여, 두 상태가 악순환을 이루게 된다.
사례: 성취 이후에 찾아온 공허함
민영은 취업 과정에서 오랜 시간 노력한 끝에 대기업에 입사하는 데 성공했다. 주변에서 “이제 정말 꽃길만 걷겠다”고 부러워했다. 처음에는 취업이 된 것이 깊었지만 회사에서 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원하는 게 맞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목표를 달성해도 마음 한구석이 영 허전해, 밤마다 “이렇게 계속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불안감에 잠 못 드는 날이 늘었다.
처음엔 단순한 피로인가 여겼으나, 점차 대인관계를 피하고 식사량도 줄어들면서 우울감이 깊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전문 상담을 받아 보니, 문제의 발단은 ‘삶의 목적 상실’에서 비롯된 실존적 공허였지만, 이를 적기에 인지하지 못해 우울증 문턱까지 다다른 상태라는 진단이 나왔다.
실존적 공허를 대처하여 우울증으로 가는 길을 막기
의미 탐색 훈련하기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실존적 공허를 완화하는 핵심이다. 로고테라피는 “어떤 가치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가?”를 중심에 두고 치유를 시도한다. 작은 취미나 봉사활동이라도 ‘가치 있다’고 느끼는 활동을 꾸준히 해 보는 것이 좋다.
지인들과 솔직한 대화하기
“사실 내 삶이 공허하게 느껴져”라고 말하는 순간,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거나 도움을 제안할 수 있다. 실존적 공허를 지나치게 부끄러워하거나 우울증일까 두려워 대화를 피하면 문제는 더 심화할 뿐이다. 혼자 고민하기보다, 편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지인을 찾아보자.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 사람이 저술한 책 읽기
실존적 공허는 개인적인 경험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해왔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책이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겪었던 고민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 대한 통찰을 얻으면, 자신의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위로를 넘어, 자신의 실존적 질문에 대한 힌트를 찾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우울감이 심화되면 전문 상담받기
극단적인 무기력과 식욕·수면 변화, 자해 충동 등 우울증의 징후가 보인다면 즉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무리 의미 부재가 원인이라 해도, 임상적 상태에서는 전문 치료를 병행하는 게 안전하다.
맺음말
실존적 공허는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고민이다. 다만, 이를 오래 회피하고 방치하면 우울증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나는 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이 들기 시작했다면, 단순한 우울감으로 치부하기보다 의미 부재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임상적 증상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삶의 목적을 찾는 활동으로 비교적 쉽게 회복할 수 있지만, 이미 생활 기능이 무너지고 극심한 무기력에 시달린다면 전문가와의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하다. 반대로, 자연스러운 실존적 고민을 성급하게 우울증으로 단정 짓고, 스스로 탐색해야 할 과정과 의미 찾기를 미루게 되는 것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고민을 깊이 들여다보고 삶의 방향을 정하는 과정은 중요하며, 이를 통해 내면의 공허함을 보다 건강하게 마주할 수 있다.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은 때로 두려움을 안긴다. 하지만 그 고민을 피하지 않고 마주할 때, 우리는 더욱 단단한 자아와 분명한 방향성을 구축하게 된다. 실존적 공허와 우울증 사이를 구분하고, 상태에 맞게 대처하는 것은 나 자신을 돌보는 첫걸음이자,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긍정적인 자아 개념을 마련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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