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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정보

실존적 공허(Existential Vacuum)란?

실존적 공허

실존적 공허가 부각되는 시대

과거에는 종교나 공동체가 개인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역할을 어느 정도 담당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개인주의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동시에, 개인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어려움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많은 사람이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많은 사람들이 실존적 공허(Existential Vacuum)를 경험하고 있다.

빅터 프랭클은 이 현상을 “인간이 삶의 의미를 상실했을 때 겪는 근본적 허무감”이라고 정의하면서,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삶 전반의 동력이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현대 사회의 빠른 변화와 압도적인 정보의 홍수, 그리고 개인주의의 심화가 맞물려 이러한 실존적 위기가 더욱 고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실존적 공허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실존적 공허의 개념

(1) 실존주의 심리학의 관점

실존주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실존적 공허”는 인간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했을 때 느끼는 심리적·정신적 상태를 일컫는다. 이는 단순한 우울감이나 스트레스와는 달리, 자신의 “존재 이유” 자체가 불분명하다는 데서 오는 깊은 허무함이다. 어빈 얄롬은 인간이 죽음·자유·고독·무의미라는 네 가지 실존적 조건에 직면하면서 경험하는 불안과 공허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중에서도 무의미함(Meaninglessness)은 실존적 공허를 야기하는 핵심 요인이다.

(2) 로고테라피의 관점

로고테라피의 창시자인 빅터 프랭클은 “인간의 근본 동기는 쾌락이나 권력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이 의미가 상실되거나 의문이 생긴다면, 그 시점에서 실존적 공허가 발생한다. 프랭클은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극단적인 상황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살 것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인간을 견디게 하는 힘이라고 역설했다. 이는 의미 상실과 공허감이 단순한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과 직결되는 문제임을 시사한다.

 

현대인이 겪는 실존적 위기의 배경

(1) 과잉 선택과 정보의 홍수

현대 사회가 제공하는 자유와 선택지는 과거 그 어느 시대보다 많다. 직업, 라이프스타일, 취미, 심지어 인간관계까지 모든 면에서 개인적 취향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선택지가 많을수록 삶의 방향을 잃기 쉽다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난다. 삶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을 때 과도한 선택의 자유는 오히려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

(2) 소비 문화와 물질적 가치관

물질적 풍요와 소비 문화가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이 일시적인 쾌락을 통해 공허감을 해소하려고 시도한다. 가령 쇼핑, 게임, SNS 등은 잠시나마 자신의 무의미함을 잊게 해 주지만, 결국 근본적인 존재 이유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활동이나 자기만의 가치관 정립 없이 물질적 욕구에만 의존하는 삶은 “실존적 공허”를 더욱 가속할 수 있다.

(3) 사회적 비교와 소셜미디어의 영향

오늘날 대중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실시간으로 접한다. 이는 과도한 비교와 박탈감을 유발해 자기 삶이 초라하게 보이는 왜곡된 시각을 만든다. 결국 “남들처럼 행복해 보이지 못한다”는 실존적 불안이 깊어지고, 공허감이 커지게 된다.

 

공허감이 초래하는 심리적·사회적 문제

(1) 우울증과 자기 효능감의 저하

실존적 공허를 해소하지 못하면, 자기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워지고, 이는 우울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내가 무엇을 해도 결국 무의미하다”는 사고방식이 지속되면 자기 효능감과 자존감마저 크게 떨어진다. Park(2010)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의미 재구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공허감이 심리적 복원을 방해하고 우울과 불안을 가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 인간관계의 피상화

실존적 공허에 빠진 사람은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조차 “왜 존재하는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깊은 유대감을 느끼기 힘들다. 이 때문에 표면적인 만남에 그치거나, 반대로 지나친 의존 관계를 형성해 관계가 쉽게 깨지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한다.

(3) 사회적 고립과 무기력

공허감은 결국 사람이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멀어지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의욕을 잃은 개인은 사회참여나 공동체 활동에도 소극적으로 되며, 그 결과 더 깊은 고립을 느낀다. 이러한 고립감은 또다시 공허감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만들기 쉽다.

 

맺음말

실존적 공허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또한 그들의 삶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큰 숙제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은 청소년기에 등장할 수도 있고, 혹은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찾아올 수도 있다. 그만큼 우리 인생 전반에 걸쳐 피할 수 없는 물음이다. 그러나 점점 사회는 과잉 선택과 정보 과부하, 물질적 가치관의 우선순위, 그리고 끊임없는 비교의 문화가 어우러져, 이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가 더욱 까다로워졌다.

 

빅터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상실했을 때 인간이 겪는 공허감과 무기력함은 정신적 건강과 삶의 동력을 크게 약화한다”라고 주장하며, 이를 극복하는 것이 곧 인간 존재의 핵심 과제임을 강조했다. 실제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거나 재정의하는 과정은 우리의 정신적·정서적 안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만약 의미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쉽게 무기력과 무의미에 빠져들 수 있으며, 이는 인간관계부터 개인의 성취감, 사회 참여까지 전반적인 삶의 질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결국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 메시지를 깊이 새겨야 한다. 물질적 풍요나 정보의 홍수는 결코 우리 내면의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 해답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 오히려 이러한 외부 조건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내면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따라서 실존적 공허를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본질적인 질문에 직면할 기회로 삼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는 비단 개인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의 더 나은 삶, 더 건강한 정신, 그리고 더 의미 있는 사회를 위해, “삶의 의미를 상실했을 때 생기는 공허와 무기력함”이라는 프랭클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실존적 공허는 결코 피할 수 없는 문제이자, 동시에 성장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준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이 길고 힘들 수는 있지만, 바로 그 여정 자체가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