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군은 오늘도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라는 다짐으로 아침을 연다. 직장 동료들보다 10분 일찍 출근해 서류를 정리하고, 퇴근 후에는 마치 의무처럼 영어학원으로 향한다. 빽빽한 일과를 끝내고 늦은 밤 혼자 사는 집에 돌아와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갑자기 “왜 이렇게 허전하지?” “과연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같은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마음 한구석에 스며든 이 공허를 지우려는 듯, 그는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꺼내 숏츠를 재생한다. 숏츠의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지만 영상을 넘긴다. 잠깐은 웃음 짓고, 잠깐은 무감각해지려 애써 보지만, 화면 속 빠르게 흘러가는 장면들 사이에서도 허전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실존적 공허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무의식적 상태
사람들은 흔히 “열심히 살아야 한다”와 같은 압박감을 갖고 산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물음이 실존적 공허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일상의 바쁨에 파묻혀 생각할 틈이 없거나, 막연히 “다들 그렇지”라고 여겨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 사회는 정보와 자극이 넘쳐난다. 신작 드라마나 숏폼 영상, 소셜미디어 피드를 무의식적으로 스크롤 하며 순간의 감정 공백을 메우다 보면,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불안정함이나 공허함을 직접 마주할 기회가 줄어든다. 이런 식으로 놓쳐버린 질문들, 예컨대 “나는 누구인가?” 같은 근본적인 물음은 점차 묻힌다. 문제는 이 질문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의식 밖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존적 공허의 순간들: 사례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정확히 공허인지 모르겠다면, 다음의 사례들을 살펴보고 나의 상태와 비교해 볼 수 있다.
목표를 달성했는데도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
민아는 오랫동안 준비해 온 시험에 합격했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은 환호했고, 부모님도 “열심히 했으니 이제부터는 꽃길만 걸어라.”라며 기뻐했다. 시험을 치를 때마다 느꼈던 불안과 부담은 이제 사라졌고, 성취의 기쁨이 찾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합격 사실이 확정된 뒤, 민아는 자꾸만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머리가 하얘지는 기분이 든다. 주위의 격려와 축하가 부담스러워질 만큼, 마음 한켠에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들어찬다. “정말 이게 내가 원했던 전부인가?”라는 물음이 계속해서 맴돌 뿐이다.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준비해 온 시험에 합격했거나, 회사에서 승진하는 성과를 이룬 뒤에도 허무함을 느낀다. 주위에서는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으니 행복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지만, 정작 본인은 “다음에는 뭘 하지?”라는 막막함에 사로잡힌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이들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성취나 물질적 보상에 비해 마음 한켠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외적 목표만 바라보다가, 정작 내면의 의미나 방향성을 확립하지 못했을 때 자주 찾아오는 실존적 공허의 사례다.
남들이 보기엔 풍족한데 정작 스스로는 즐겁지 않은 경우
지윤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직장을 다니고, 월급도 적지 않게 받는다. 친구들은 “너처럼 안정적으로 사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부러워하지만, 정작 지윤은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어딘가 무기력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데도, 막상 주변에 털어놓으면 “원래 다 그렇게 사는 거야”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주말이면 잠깐 여행을 다녀오거나 쇼핑으로 기분을 전환해 보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문을 닫고 혼자 있을 때면 다시 “이 길이 맞는 걸까?”라는 의문이 몰려온다. 남들이 보기엔 부족한 것 없는 삶이지만, 지윤만은 알 수 없는 답답함과 함께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어쩌면 다들 이렇게 살고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넘기려 하지만, 마음 한켠에 남은 공허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별다른 문제 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꾸만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진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 예컨대 “직장도 괜찮고, 월급도 적당한데 이상하게 만족스럽지 않다”는 식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이나, 본인만은 알 수 없는 답답함 속에서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지?”라는 근본적 고민을 품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실존적 공허를 겪으면서도 “다들 이렇게 사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합리화하고 넘어가곤 한다.
편안한 가정 속에서도 이유 모를 허탈감을 느끼는 경우
혜진은 결혼 후 오랜 시간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책임져 왔다. 주변에선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데, 뭘 고민하냐”며 가정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혜진 스스로는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서 자신이 점점 사라져 가는 기분을 느낀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밀린 집안일을 하다가, 저녁이면 남편을 맞이하는 생활이 몇 년째 계속되자,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어느 날 갑작스레 마음에 꽂혔다. 특별히 잘못된 일도 없는데, 속이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이들 웃음소리에도 서글픔이 비집고 들어오는 걸 보면서, 혜진은 “어쩌다 내 삶이 이렇게 됐을까”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가족들이나 주변에서 보기엔 안정적으로 사는 모습이지만, 정작 본인은 특정한 목표나 열정을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사례가 있다.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과 책임감만 남아 있어,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는 가시적인 문제 없이도 충분히 실존적 공허가 발생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소셜미디어에서 남과 비교하다가 느끼는 무력감
선우는 퇴근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켠다. SNS 피드에는 화려한 해외여행 사진, 근사한 레스토랑 인증샷, 폭죽이 터지는 파티 장면 등이 빼곡히 올라온다. 전에는 ‘멋지다’며 가볍게 좋아요를 누르고 넘겼지만, 요즘은 영 달갑지 않다.
“다들 이렇게 멋진 삶을 사는데, 난 왜 제자리인 것 같지?”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곰곰이 따져보면 특별히 불행한 일도 없는데, 스스로 초라해지는 느낌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한편으로는 “나만 이러는 걸까?” 하고 자책하기도 하면서, 이내 다시 화면을 넘긴다. 아무리 손가락을 바삐 움직여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래서,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라는 질문이 떨어지지 않는다.
SNS를 보며 지인들의 멋진 여행 사진, 맛집 방문 인증, 행사 참석 모습 등을 접할 때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저 사람들은 즐겁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왜 매일 똑같지?”라는 의문이 들지만,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보다 “왜 나만 이 모양일까?” 하며 자책하기가 쉽다. 사실 이 역시 실존적 공허가 드러나는 한 형태다. 나만의 기준이나 가치보다 타인의 삶과 비교하는 데 집중할수록, 내면적 의미를 구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존적 공허를 의식하지 못하는 이유
끊임없는 자극
우리 사회는 멈춤 없이 돌아간다.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주어지는 업무, SNS, 영상 콘텐츠 등은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질문을 잠재우는 역할을 한다. 이는 일시적으로 심심함이나 허전함을 채워 주지만, 결국 근본적인 의문을 해결하진 못한다.
일반화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지 않으니, “원래 다 이렇게 살지 않나?”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 문제는 누군가 먼저 “나는 왜 이 길을 가야 할까?”라는 진지한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다 같이 그냥 지나쳐 버린다는 점이다.
사회적 시선
주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 보이면, 상대적으로 자신이 느끼는 공허함이 왠지 약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행복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치가 존재하다 보니, 겉으로는 안정을 추구하는 듯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이유 모를 허무함에 시달리는 일이 빈번해진다. 이처럼 내면의 공허를 ‘나만 겪는 문제’라고 치부하고 외면하기 시작하면, 정작 필요한 해결의 실마리는 더욱 찾아가기 어려워진다.
맺음말
실존적 공허감은 때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틈새로 스며들어 일상 전반을 가볍게 흔든다. 한동안은 ‘별문제 없겠지’라는 생각으로 넘겨 버릴 수도 있지만, 이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감정이 아니라 단지 의식되지 않았을 뿐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인식하지 못하면 해결할 수 없다. 그러니 주기적으로 ‘나는 지금 어떤 기분이며,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라고 자문해 보면, 무심히 지나치던 공허함을 다시 한번 들여다볼 기회를 얻을 필요가 있다. 일기를 써서 마음을 표현해 보거나, “요즘 왠지 허무함이 생기는 것 같다”라는 고민을 주변 사람과 나누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게 다른 이들의 공감을 통해 ‘나만 겪는 일이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을 얻는 순간, 예상치 못한 해답의 실마리를 발견할 가능성도 커진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물음은 결코 특별한 순간에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가 쉴 새 없이 제공하는 수많은 정보와 기대치 속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근본적 질문이기도 하다. 만약 이 글을 읽으며 “혹시 내가 느끼던 그 허무함이 실존적 공허감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미 이를 인지하는 첫 단계를 밟은 셈이다. 공허함이 ‘존재하지 않는 감정’이 아니라 분명 ‘존재하는 감정’임을 깨닫는 순간, 더욱 진솔하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물음에 답해 나가는 과정이, 앞으로 닥칠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도 스스로의 의미를 흔들림 없이 세워 가는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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